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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중의 뜰 앞에도 어느새 서늘한 기운이 감돕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기세등등하던 여름의 열기는 간데없고, 옷깃을 여미게 하는 바람이 그 자리를 채웁니다. 계절이 오고 가는 일에는 이토록 에누리가 없습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제때 오고, 미련 없이 떠날 줄을 압니다. 자연의 질서가 이리도 명료한데, 우리네 삶은 어찌 그리 복잡하고 고단한지 찻잔을 앞에 두고 묵상에 잠깁니다.

도심의 풍경을 떠올려 봅니다. 빽빽한 지붕들에 가려진 좁은 하늘 아래, 사람들은 저마다의 짐을 지고 물결처럼 휩쓸려 다닙니다. 그들의 얼굴이 유독 야위어 보이는 것은, 아마도 삶의 무게 때문만은 아닐 것입니다. 채우려 해도 채워지지 않는 갈증, 쥐려 해도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것들에 대한 미련이 마음을 마르게 하기 때문이겠지요.

가만히 보면, 우리는 너무 먼 길을 돌아가고 있습니다.
행복이라는 파랑새를 잡기 위해, 혹은 사랑이라는 이름을 완성하기 위해 거창한 조건을 내걸고, 스스로 험난한 길을 자처합니다. 계절은 저리도 쉽게 흐르는데, 우리는 관계 하나를 맺는 일에도, 마음 하나를 건네는 일에도 온갖 셈을 하며 어렵게만 살아갑니다. 애쓰면 애쓸수록 본질은 흐려지고, 집착은 깊어집니다.

어두운 밤길을 걷다 보면 문득 나뭇잎 사이로 스며 나오는 가로등 불빛을 마주할 때가 있습니다. 그 은은한 빛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단지 우리가 너무 먼 곳의 별을 좇느라, 혹은 너무 바삐 걷느라 바로 코앞의 그 빛을 보지 못했을 뿐입니다.

진리는 늘 가까이에 있습니다.
따뜻한 차 한 잔의 온기, 창틈으로 스며드는 아침 햇살, 퇴근길에 마주하는 가족의 얼굴, 혹은 밤거리를 비추는 가로등 하나... 우리를 살게 하는 힘은 저 멀리 높은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비루해 보이는 일상 속에 보석처럼 박혀 있습니다.

그러니 부디, 행복을 찾아 너무 멀리 헤매지 마십시오.
이미 당신 곁에 와 있는 정다운 불빛들을 외면하지 마십시오. 가득 찬 욕심을 조금만 비워내면,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그 소박한 빛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충만할 수 있습니다.

어둠이 깊을수록 빛은 더 선명해지는 법입니다. 오늘 밤, 당신이 걷는 그 길 위에도 이미 따스한 빛이 내려앉아 있음을 잊지 않길 바랍니다. 소유하려 들지 않고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삶은 충분히 아름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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