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중의 시계는 도시보다 한 발짝 앞서 돕니다. 11월도 하순으로 접어드니, 산은 이미 겉옷을 벗고 겨울 채비에 들어갔습니다. 뜰 앞에 서성이던 바람 끝이 제법 매서워져, 옷깃을 절로 여미게 되는 저녁입니다.이맘때가 되면 밤하늘은 유난히 투명해집니다. 머리 위로 쏟아질 듯 초롱초롱한 별들을 보고 있노라면, 저 빛이 영원할 것 같은 착각이 듭니다. 허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알게 됩니다. 가장 빛나는 순간은 찰나일 뿐, 이 밤이 깊어 새벽이 오면 저 별들 또한 자취를 감추고 맙니다. 태어난 것은 반드시 소멸한다는 자연의 섭리를 저 작은 별빛 하나가 묵묵히 일러주고 있는 것입니다.방 안에 들어와 찻물을 올리고 가만히 손끝을 내려다봅니다. 지난여름, 뜰 앞의 꽃잎을 짓이겨 물들였던 붉은 흔적이 이제는 손톱 끝에 위..
산중에 밤이 깊어지면, 오두막 밖은 칠흑 같은 어둠입니다. 문명의 불빛이 닿지 않는 이곳에서는 오직 하늘만이 스스로 빛을 냅니다. 툇마루에 나와 앉아 차 한 잔을 우립니다. 찻물이 식어가는 동안, 문득 세상의 많은 이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무언가를 잃어버렸다는 상실감에 젖어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사람들은 흔히 슬픔을 불행이라 여기고, 고독을 형벌이라 여깁니다. 그러나 가만히 들여다보십시오. 우리가 눈물을 흘릴 수 있다는 것은, 아직 마음이 딱딱하게 굳지 않았다는 증거입니다. 메마른 나무는 울지 않습니다. 죽은 돌멩이도 울지 않습니다. 오직 생명이 있고, 피가 돌고, 여린 감성이 살아있는 존재만이 물기를 머금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 흐르는 눈물을 부끄러워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당신의 영혼이 아직 맑게 깨..
산중의 뜰 앞에도 어느새 서늘한 기운이 감돕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기세등등하던 여름의 열기는 간데없고, 옷깃을 여미게 하는 바람이 그 자리를 채웁니다. 계절이 오고 가는 일에는 이토록 에누리가 없습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제때 오고, 미련 없이 떠날 줄을 압니다. 자연의 질서가 이리도 명료한데, 우리네 삶은 어찌 그리 복잡하고 고단한지 찻잔을 앞에 두고 묵상에 잠깁니다.도심의 풍경을 떠올려 봅니다. 빽빽한 지붕들에 가려진 좁은 하늘 아래, 사람들은 저마다의 짐을 지고 물결처럼 휩쓸려 다닙니다. 그들의 얼굴이 유독 야위어 보이는 것은, 아마도 삶의 무게 때문만은 아닐 것입니다. 채우려 해도 채워지지 않는 갈증, 쥐려 해도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것들에 대한 미련이 마음을 마르게 하기 때문이겠지요.가..
